[수의사로 산다는 것] #5. 상처와 메뉴

  • 로얄동물메디컬센터 김영환 원장

입력 : 2016.11.21 07:51

[연재]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원장님의 저서

본 컬럼은로얄에이알씨에서 출간한 '수의사로 산다는 것'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출처:petzine
출처:petzine

꼬박 12시간이 넘는 주간 진료가 끝나면 야간 진료가 시작된다. 진료실과 처치실, ICU, 안내데스크에 이르는 병원의 모든 인원이 야간 진료팀으로 바통터치를 하게 되는데, 이때 퇴근하는 스태프들은 모두 발갛게 충혈된 눈을 반쯤 뜨고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웬일로 주간 선생 두엇이 퇴근도 하지 않고 야간 선생들과 삼삼오오 모여 있다. “왜 퇴근들을 안 하시나~” 슥 다가가보니, 퇴근하던 인턴 선생과 1년차 선생이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가 섭섭하다며 버티고 섰다. 이런 경우 열에 아홉은 다음날이 오프다. 고된 업무 끝에 찾아오는 꿀맛 같은 휴식을 그냥 놓쳐버리기 아까운 주간 선생들이 야간 선생들의 조언을 받들어 병원 근처의 맛집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나도 한몫 거들어 전에 지인과 갔던 횟집을 추천해주었다.

자연산 회가 큼직큼직하게 썰려 나오는데 씹는 맛이 신선하고 가격에 비해 양도 많은 곳이었다. 인턴 선생과 횟집 얘기를 하며 나 역시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가는 동안, 야간 진료 인턴 선생 하나는 제주도 통돼지 집을 추천한다. 까만 통돼지 삼겹살에 해물까지 곁들여 구워먹는 곳인데 꽤나 맛있었다면서. 아아, 이번에도 군침이 절로 돈다.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화기애애하게 진행되는 사이, 소형견 한 마리가 큰 개에게 물려 응급으로 병원에 오고 있다는 전달이 왔다. 가끔 야간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다가 먼 거리에서부터 찾아오는 보호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하남시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이었다. 아마 1시간이 안되어 도착할 것이다. 나는 야간 진료 선생들에게 서둘러 처치 준비를 지시하고 혹시 모를 출혈에 대비해두기로 했다.  

주간 선생 두 명은 통돼지 집과 횟집의 약도를 받아들고 병원을 나섰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맥주 한두 잔 마시다 보면 새벽공기가 이슥해져야 집에 돌아갈 것이다. 이 모든 건 내일이 오프이기에 가능한 일, 만약 다음날이 정상출근이었다면 아무리 체력이 좋은 젊은 인턴 선생일지라도 12시간의 주간 진료 시간이 내내 지옥 같을 테니까 말이다. 주간 선생들이 떠나고 야간 선생들만 남은 병원은 활기를 조금 잃었다. “심하게 물린 걸까?” 인턴 선생 하나가 말했다. 안내데스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큰 개에게 물려 다쳐서 오고 있다는 얘기만 했을 뿐 다른 이야기는 없었다고 했다. 어떤 큰 개에게 물렸는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에 대해서도. 

자정이 넘어서 병원으로 보호자 두 명과 환자가 도착했다. 인턴 선생이 재빨리 나가서 환자를 안고 들어왔다. 아이는 ‘꼬망’이라는 앙증맞은 이름의 말티즈 남아였는데, 다른 말티즈들보다 길쭉하고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꼬망이를 처치대 위에 데려와서 찬찬히 보니 외상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 보였다. 우선 출혈이 보이는 등과 배의 털을 밀고 상처 부위를 소독하기로 했다. 이렇게 큰 개한테 잘못 물렸을 경우, 내장이나 척추가 손상되기도 하므로 상처 부위에 대한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 인턴 선생과 2년차 선생이 꼬망이의 앞다리와 뒷다리를 나누어 보정을 하고 배 쪽의 털을 밀기 시작했다. 전동 바리캉의 위~잉 하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꼬망이가 몸을 심하게 뒤틀었다. 큰 개한테 덤벼서 물렸을 정도니 깡이 보통 센 게 아닐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다리를 보정하고 있던 인턴 선생의 손을 순식간에 물어버리는 바람에 결국 주둥이에 입마개를 채우고 다시 털을 밀 수밖에 없었다. 

배 쪽에 송곳니에 찍힌 듯 보이는 상처가 구멍처럼 생겨 있었다. 등 뒤의 털을 밀어보니 그곳에도 작은 구멍이 척추 가까운 곳에 생겨났다. 행여 척추 근처 신경에 손상이라도 갔을까 염려했지만 등의 상처는 다행히 크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고, 배의 상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간단한 상처 치료를 끝내고 약 처방 지시를 내린 뒤 꼬망이를 데리고 로비로 나갔다. 꼬망이 보호자는 젊은 부부로 하남에서 개를 10마리나 키우는 사람들이었다. 예전부터 우리 병원을 자주 찾는 단골 보호자이기도 했지만 야간 진료에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얼굴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꼬망이 보호자의 집에서는 대형견과 소형견을 같이 키우다 보니 이렇게 물리는 사건이 종종 있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꼬망이가 심하게 다치지 않았으나 심하게 물릴 경우 즉사도 가능하기 때문에 대형견과 소형견의 분리를 당부했다. 
주인에게 안긴 꼬망이는 처치실 안에서 인턴 선생을 물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꼬리를 흔들며 보호자 앞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다. 얄궂은 녀석, 나는 꼬망이를 손가락으로 톡 누르며 타이르듯 말했다. 
“다음부터 절대 큰 개한테 덤비면 안 된다.”

 꼬망이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 야간 진료팀도 야식을 주문해야 할 시간이 왔다. 우리 병원의 점심과 저녁은 병원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 해결하지만 야간에는 야식을 배달해서 먹는다. 때문에 메뉴들이 무척 현란하다. 족발, 보쌈, 치킨, 피자, 중식과 일식, 한식 비스무리한 음식까지....... 야식을 먹고 중간 중간 군것질까지 하다 보면 야간 진료를 하는 건지 야간 ‘먹방’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 

야간 진료를 거치는 인턴 선생들의 뱃살은 처음 야간 진료팀에 들어올 때보다 자연스럽게 불어난다. 여자 선생들이 볼멘소리를 하며 다이어트 식단으로 도시락을 챙겨오기도 하지만 일주일도 못가서 전부 야식으로 전환이다. 오늘의 메뉴는 다수결에 의해 보족(보쌈과 족발) 세트로 결정되었다. 

나는 배달이 될 때까지 주간 진료에서 전달된 처치 사항에 따라 환자들을 돌보도록 지시했다. 아까 꼬망이에게 손을 물린 인턴 선생이 유난히 씩씩하게 대답하는 소리가 퍽 듣기 좋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고갯짓으로 괜찮냐고 물으니, 밴드가 붙은 오른쪽 중지손가락을 얼굴 옆으로 바짝 붙이며 V자를 그린다. 씩 웃는 인턴 선생을 따라 나도 그만 웃고 만다. 
주야간을 막론하고 진료를 보는 선생들의 대부분이 처치 중 기습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손이나 팔을 개에게 물리는 경우가 가장 많고, 고양이를 안거나 보정할 때의 상처도 상당하다. 특히 고양이는 얼굴과 팔, 다리 할 것 없이 순식간에 할퀴고 지나가는 폭풍을 동반하므로 얌전한 고양이라 할지라도 방심은 금물이다.   

수의사의 상처는 보호자나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동물을 치료하는 사람이 당연하게 겪는 직업병처럼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수의사도 사람이다. 물리면 아프고 할퀴면 상처가 생긴다. 고양이의 날카로운 발톱에 찍히거나 할퀴어 생긴 깊은 상처는 흉터로 남기도 하고, 치아 상태가 안 좋은 개에게 잘못 물리면 상처가 곪아서 쉽게 낫지도 않는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동물에게 처치를 할 때엔 보정이 무척 중요하다. 보정은 동물이 치료하는 사람을 해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처치할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동물과 사람의 상호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보정을 해도 꼬망이처럼 몸부림치며 사람을 무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입마개를 하게 되는데, 가끔 보정하는 것을 본 보호자가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냐며 항의를 하기도 한다. 소중한 반려동물이 아픈 것도 속상한데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다뤄지는 것 같은 느낌에 화도 나고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이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 병원에서도 고통에 몸부림치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보정을 하고, 심지어 침대에 묶기도 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은 사람보다 그 정도가 심하고 통제가 어렵기 때문에 동물병원에서의 보정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당장 안쓰러워 보이더라도, 결국 모든 것이 치료의 한 과정임을 보호자가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벽 2시, 드디어 보족 세트가 배달되었다. 배달직원은 배달이 밀린 탓에 평소보다 늦었다며 미안해했지만 야간 진료팀 모두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오늘은 식어버린 음식이 아닌 방금 배달된 따끈따끈한 야식을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인턴 선생은 아까 난 손가락 상처로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포크처럼 찍어서 야식을 먹었다. 집으로 간 꼬망이도 당분간 상처 때문에 평소처럼 뛰거나 배를 깔고 눕지는 못하겠지만 밥만은 잘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처가 생겨도 메뉴는 메뉴인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먹어야 산다. 비록 살이 찌더라도, 상처가 생기더라도.

출처:pet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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