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로 산다는 것] #15. 죽음 앞의 겸허함

  • 로얄동물메디컬센터 정인성 원장

입력 : 2016.12.18 11:31

펫로스 증후군 감당해 내는 방법

우리 병원은 타 병원보다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 치료 중에 사망하는 동물들도 많다. 오늘도 ICU에서 아침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아이 둘이 보호자의 곁을 떠났다. 한 녀석은 12살 노령견으로 5년 전부터 심장병을 앓아왔다. 최근 한 달 사이 심부전으로 인한 폐부종이 악화되면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이의 보호자는 직장에서 억지로 울음을 삼키는 듯 간신히 낮은 소리로 흐느끼며 점심시간이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떤 사유를 대고 조퇴를 하게 될까. 기르던 개가 죽어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까? 아니면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야 할까? 반려동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상사로 있는 직장이라면 사실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우리 병원은 타 병원보다 상태가 위중한 환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다보니 병원에서 치료 중에 사망하는 동물들도 많다. 

오늘도 ICU에서 아침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아이 둘이 보호자의 곁을 떠났다. 
한 녀석은 12살 노령견으로 5년 전부터 심장병을 앓아왔다. 최근 한 달 사이 심부전으로 인한 폐부종이 악화되면서 집중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아이의 보호자는 직장에서 억지로 울음을 삼키는 듯 간신히 낮은 소리로 흐느끼며 점심시간이 끝나는 대로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녀는 어떤 사유를 대고 조퇴를 하게 될까. 기르던 개가 죽어서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있는 그대로 말할까? 아니면 다른 이유를 생각해내야 할까? 반려동물의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상사로 있는 직장이라면 사실대로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겠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늘 함께했던 반려동물이 안간힘을 쓰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이 더 클 테니까. 예를 들기조차 미안하지만 보호자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홀로 아이가 숨을 거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보호자가 집에 돌아와 그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반려동물이 보호자의 곁을 떠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할 숙명과도 같다. 반려동물을 평생의 ‘반려’로 삼고 함께 살아가더라도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동물의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열배 백배 고통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반려동물이 보호자를 두고 세상을 떠나면 후유증을 동반하기도 하는데, 이것을 일컬어 ‘펫로스 증후군’이라 한다.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 심리적 고통을 수반하는 펫로스 증후군은 심하면 일상생활까지 위협하는 등 침잠의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이 중요하다.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인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이를 극복하기까지는 심리학적으로 4단계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첫 번째로는, 반려동물을 잃었을 당시의 충격으로 쇼크 상태에 접어들게 되고 사실을 부정하고 괴로워한다. 두 번째로, 곁에 반려동물이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비통함과 절망감에 빠진다. 반려동물과의 추억이 가득한 집안에서 있을 때 이 고통이 더 커지게 된다.  세 번째 단계로, 회복기에 접어들고 여전히 슬픈 마음은 마음 한구석에 있는 상태이지만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되고, 네 번째 단계가 되면 완전하게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네 번째 단계까지의 시간은 평균적으로 2개월 정도 걸린다.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심리학>의 저자 ‘세르주 치코티’가 서술하길, 반려동물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남녀가 조금 다른 차이를 나타내는데, 남성은 가까운 친구를 잃은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반면, 여성은 자녀를 잃은 고통과 유사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게 된다고 한다.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위에서 말한 4단계의 회복기를 거치지 못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일상생활을 아예 영위하지 못할 정도의 대인기피증이나 심할 경우 자살에 이르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 병원에 백내장 치료를 하러 자주 왔었던 강아지 ‘나나’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는데, 나나의 보호자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우울증에 빠졌었다. 

나나의 보호자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나나의 죽음을 하루빨리 인정해야 한다는 것. 다른 방법으로는 연인과 헤어졌을 때의 방법처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 즉, 새로운 반려동물과 함께 아픔을 치유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보호자 스스로 극복할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어느새 자신도 망가지고 반려동물과의 추억도 엉망이 되어버릴 뿐이다. 우리 병원에서 나를 포함한 수의사들은 보호자의 동의가 허락되는 한 되도록 병원에서 끝까지 치료를 하는 편이다. 예전처럼 치료가 불가하다하여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병원 입장에서는 ‘우리 동물병원은 반려동물의 사망률이 낮다’는 구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는 사실 책임회피와 다르지 않다. 하나의 생명을 위해 끝까지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까지 끌어안는 것은 수의사로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소중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야 하는 보호자들을 위한 배려이자 우리 병원의 신념이기도 하다.

처음에 우리 병원을 찾은 보호자들은 사망한 환자의 시신을 안치장소로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일단 겁을 먹는다. ‘이 병원에 오면 동물이 죽어나가는구나!’ 하면서. 하지만 꾸준히 병원을 찾아오는 보호자들은 알고 있다.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환자들이 여럿 생기는 것은 그만큼 보호자가 병원을 믿기때문이고, 병원에서도 최선을 다하려 한다는 것을. 이 때문에 가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환자가 결국 생사의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시신이 되어 운반될 때, 로비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다른 보호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는 것이다. “어머, 쯧쯧....... 죽었나보네~ 얘는 어쩌다 죽은 거예요?” 마치 시골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어르신들이 서로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주거니 받거니 건네는 인사와도 같다. 사망한 환자의 보호자가 동반하여 있을 때는 참으로 난감하다. 

이럴 때는 나 역시 시골의사가 되어 눈을 찡긋하고 작게 속삭인다. “아이쿠, 제가 나중에 말씀 드릴게요. 지금은 보호자가 계셔서.......” 어쩌면 다른 보호자들이 느끼기에 불쾌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타인의 반려동물의 죽음에 동요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은 언제든 자신의 반려동물도 떠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초연함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할아버지 할머니가 노인 병동에서 ‘자네는 어디가 아픈가, 나는 얼마 안 남았다하네~’, ‘허허~ 나도 그렇다네. 손자는 잘 크고 있고?’ 하며 마치 일상적인 대화인 듯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당장 내일이라도 다가올 수 있는 죽음에 대해 초연해짐으로써 남은 가족들에게도 슬픔을 갈무리할 여유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감정을 절제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내게 일어날 어둠의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것은 반려인에게도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죽음 앞에 겸허해지는 것,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러한 마음가짐이 펫로스 증후군을 이겨내는 방법인 것만은 분명하다.  내일, 또 어떤 환자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죽음이 익숙해지는 일이 없기를. 매일 보는 죽음일지라도 그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길. 수의사인 나 역시 기도하는 바다.

 

본 컬럼은 로얄에이알씨에서 출간한 '수의사로 산다는 것'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출처:pet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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