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로 산다는 것] #37. 목욕의 신

  • 로얄동물메디컬센터 김영환 원장

입력 : 2017.03.09 17:41

고양이 키운 지 얼마나 되셨어요?

수의사로 동물병원에서 근무하다보면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성격도 생김새도 저마다 다른, 여러 동물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그만큼 만나야 할 보호자의 수도 헤아릴 수 없다. 때로는 황당하고 희한한 일도 겪게 된다. 내가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병원에 찾아온 적이 있다. 이동장 안에는 제법 몸집이 큰 고양이가 들어있는지 여자아이는 두 손으로 이동장을 들고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대뜸 고양이를 키우는 선생님을 불러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진료접수도 거부한 채 무조건 고양이를 키우는 선생님을 불러달라는데, 함께 인턴생활을 하던 동료의 시선 하나가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려는 내게로 향했다. 시선 하나가 다가오자 계속해서 다른 시선들이 내게 집중된다. 결과적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가 아이 앞에 서있게 되었다. “무슨 일이니?” 여자아이는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고양이 키운 지 얼마나 되셨어요?” 미심쩍다는 듯 거꾸로 질문을 한다.

“이제 여섯 살이야.” 일단 영문을 알아야 할 것 같아 성실히 답변하자마자, “6년째라는 소리로 이해하면 될까요?” 확실히 해두겠다는 듯 쐐기를 박는 소리를 한다. 이쯤 되니 나도 참 황당해져서 “여섯 살이니까 6년째지!”라고 짜증 섞인 말투로 받아치고 말았다. “키운 지 얼마나 됐냐고 물었는데 여섯 살이라는 답변은 명확하지가 않죠. 여섯 살짜리를 데려와서 이제 겨우 이틀째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작고 마른 여자아이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또박또박 옳은 말을 하는데 별 수 있나.

“6년째 키워서 여섯 살이야. 됐니? 그런데 너 용건이 뭐야. 고양이가 아파?” 이제야 이동장 안의 고양이 울음소리를 듣고 수의사의 본분으로 돌아가 물었다. “음.......” 여자아이는 잠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그럼 경험이 많겠네요.”라고 또 알 수 없는 요상한 소리를 한다. 왠지 나는 얼굴이 붉어지는 듯도 하고,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아이의 말에 띵- 하고 망치로 한 대를 얻어맞은 줄 알았다. “목욕 좀 시켜주세요.” 뭣이라....... 아니 요즘 여중생들은 다들 이리 도발적인가! 

“제가 이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고 싶은데요. 엄마가 자꾸 더럽다고 버리래요. 그래서 제가 책임지고 깨끗하게 만들 거라고 했는데, 휴우 도저히 못하겠어요.” 아니아니, 나라는 인간의 사상이 이렇게까지 오염되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무슨 생각을 한 거냐, 너! 내 얼굴은 곧 터지기 일보직전인데 주위에서는 큭큭 웃고 난리가 났다. 여자아이도 그제야 웃으며 이동장 안을 확인시켜준다. 이동장 안에는 고양이와, 고양이 브러시, 고양이 샴푸, 수건, 헤어드라이기까지 고양이 목욕에 필요한 용품이 들어있었는데 정작 고양이는 하얗고 뽀송뽀송해보였다.

“그런데 여기, 따뜻한 물은 나와요?” 아이고, 내가 졌다. 나는 여자아이의 고양이를 목욕시켜주는 대신 수월하게 목욕시키는 방법을 꼼꼼히 설명하는 것으로 잠시나마 불온한 상상을 했던 나를 속죄하기로 했다. 여자아이는 실망한 듯 조금 입을 삐죽거렸지만 감사인사를 한 뒤에 어기적거리는 걸음 그대로 병원을 나갔다. 그 아이가 고양이를 깨끗하게 씻긴 후 엄마의 허락을 받아냈을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그날 이후 나는  ‘목욕의 신’으로 불리고 있다는 슬픈 전설이!

 

본 컬럼은 로얄에이알씨에서 출간한 '수의사로 산다는 것'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출처:petzine
출처:pet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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