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로 산다는 것] #38. 우리 아기가 태어났어요

  • 로얄동물메디컬센터 김영환 원장

입력 : 2017.03.13 11:11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 말할 수 있는 아이들

보호자가 자신을 엄마, 아빠, 혹은 언니 등으로 칭하는 것은 보호자 스스로가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유대감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보호자를 ‘○○ 보호자님’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 엄마’라고 부르는 게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진다. 몇몇 보호자들은 병원에 내원하여 진료 상담을 할 때 수의사가 부르는 ‘보호자’라는 호칭에 쭈뼛거리는 표정이 드러난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이 아이의 보호자군요.” 하면서 새삼스럽게 느껴진다는 것. 나도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신혼 초에 아내가 아파서 병원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다.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내 옆에 앉아 있는데, 의사가 “○○님 보호자 분.” 하고 부르더라. 그때 ‘내가 정말 한 여자의 남편이 되었구나. 이 사람의 보호자는 내가 되는 거구나.’ 내 가족이 생겼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보호자라고 불리는 것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지니는 것 같다.

몇 년 전, 병원 옆에 있는 작은 애견 숍에서 하얀 포메라니안 암컷 새끼를 입양해간 젊은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아이에게 ‘소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소미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건강하게 자랐다. 소미가 1살이 채 안되어, 구토와 생식기에 피가 보이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 병치레 한 번 없던 아이가 갑자기 구토를 심하게 하니, 소미 엄마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겁을 잔뜩 집어먹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엉엉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집에서 달리 먹인 것은 없으며 아마도 산책 나갔다가 못 본 사이에 뭔가 집어먹었을 가능성이 큰 것 같다고 말했다. 

소미 엄마 말대로 음식에 의한 중독증상이나 장염일 수도 있지만 생식기에 피가 보인다는 증상이 더해졌기 때문에 자세한 진단은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었다. 나는 검사결과를 보고 얘기하자고 너무 걱정하지는 말라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소미는 검사 결과, 다행히 단순한 구토 증상이었다. 토사물에서 약간의 풀무더기가 확인된 것을 보면 산책하던 중, 개에게 독성을 보이는 풀을 뜯어먹는 바람에 구토를 하게 된 것이리라. 그것도 많은 양이 아니었고 구토로 대부분 게워냈기 때문에 탈수로 쇠한 기력만 찾는다면 별다른 이상은 없을 터였다. 생식기에 피가 보였던 이유는 이제 성견이 되어가는 소미가 생리를 시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사결과가 나올 때쯤, 소미 아빠도 병원에 함께 왔기 때문에 나는 부부에게 나란히 소미의 검사결과를 전했다. “어머, 개도 생리를 해요?” 소미 엄마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 젊은 부부는 이전에 개를 키워본 적도, 그렇다고 개의 생활에 대해 따로 공부를 한 것도 아니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나는 개도 생리를 하며 그 주기는 보통 6개월에 한 번씩, 대형견의 경우 12개월에 한 번씩이라고 말해주었다. 개들의 생리는 사람과는 좀 다르다. 사람은 자궁에서 임신을 준비하다가 수정이 되지 않았을 때 이를 내보내기 위해서 생리를 하지만, 개들은 임신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생리를 하는 것이다. 생리를 하는 기간은 평균적으로 2~3주가 되지만 개마다 편차가 있기도 하다.

내 말을 들은 젊은 부부는 신기해하면서도 뭔가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나는 교배를 해서 새끼를 낳을 생각이 아니라면 늦더라도 중성화 수술을 하도록 권유했다. 중성화 수술은 발정이 올 때마다 개가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하는 것을 해결해 줄 수 있고, 암컷에게 많이 발병하는 암 중 하나인 유방암과 생식기 감염 종양 등을 예방하는 장점이 있었다. 나는 반려견이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미리 중성화 수술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 또한 알려주었다. “선생님, 중성화 수술을 하면 소미가 새끼를 못 갖는 건가요?” 소미 엄마가 말했다. 

개의 중성화 수술은, 수컷의 경우 비교적 간단하게 생식기능을 제거하지만 암컷은 자궁을 적출하는 방법으로 중성화를 하게 된다. 당연히 암・수컷 모두 중성화 수술 뒤에는 새끼를 낳을 수 없다. 부부는 내 말을 듣고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아까처럼 묘한 표정으로 중성화 수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보호자들은 중성화 수술이 개들의 본능을 억제하고 학대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기피하기도 한다. 나는 소미 보호자들이 그런 의미에서 중성화 수술을 하고 싶지 않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소미가 질병으로 힘들어 할지도 모르니 소미를 위해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소미 엄마가 처음 소미를 데려왔을 때처럼 눈물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나는 내가 뭔가 잘못 말했는가 싶어 당황했다. 소미 아빠는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상황 파악이 안됐다. 대체 이 젊은 부부는 왜 이런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 것인가! 나는 약간 어리둥절한 채로 티슈를 뽑아 소미 엄마에게 주었다. 그녀는 별안간 튀어나온 눈물이 민망한 듯 얼굴을 닦으며 말했다. “저희가 아이를 가질 수 없어서....... 소미라도 새끼 낳고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부의 이야기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20대에 난소종양을 앓게 된 소미 엄마는 결국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되었고,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소미 아빠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결혼을 선택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이가 없는 대신에 평소 예뻐하던 동물을 키우기로 한 것이다.

소미가 건강하게 새끼를 가질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들에게 소미는 자식과도 같으므로 소미가 새끼를 가진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축복인 것이다. 간단히 약 처방을 받고 소미가 부부에게로 건네졌다. 소미 엄마는 “에구~ 우리 아기 다 컸네. 힘들었지?”라고 말하며 소미를 품에 꼭 안았다. 까맣고 반짝이는 눈망울로 그녀를 바라보는 소미의 얼굴은 새색시처럼 고와보였다. 두 사람과 소미의 모습은 누가 봐도 단란한 한 가족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반려동물과 보호자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그 뒤로 ‘소미의 배필 찾기’가 시작되었다. 부부는 우선 지인을 통해 같은 종인 갈색 포메라니안 수컷을 입양했다. 젊은 부부는 얼떨결에 사위까지 맞게 된 셈이다. 소미는 곧 두 마리의 새끼를 임신하게 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소미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기뻐했을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출산 당일, 포메라니안 특성상 혼자 출산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소미의 진통이 불규칙적으로 진행됐기에 난산이 예상되었다. 제왕절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고 소미가 수술에 들어간 뒤, 소미 엄마와 아빠는 소미의 짝을 안고서 로비에서 서성였다. 소미 아빠는 몇 번이나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고 한다. 

몇 시간이나 소미를 괴롭히던 난산 끝에 분만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두 마리의 새끼와 소미는 모두 건강했다. 나는 로비에서 서성이던 가족들에게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알렸다. 두 사람으로 시작된 가족은 셋에서 넷으로, 이제는 여섯이 되었다. 나는 이 젊은 부부에게 그날이 지금껏 살아온 날과 앞으로 살아갈 날을 통틀어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미 엄마가 소미를 안으면서 ‘우리 아기’라고 말했던 것이 가끔 생각난다. 나는 내 자식들에게 ‘우리 아기’라고 살갑게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아버지니까, 내 자식들은 어느새 많이 컸으니까, 내 성격이 무뚝뚝하다보니, 이런 변명 같은 조건이 하나 둘 붙으면서 정작 내 가족들에게 제대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가장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애정표현은 어쩐지 낯간지럽고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려동물에게는 거리낌 없이 사랑한다 말하고, 귀엽다 쓰다듬어주게 된다. 그 차이가 과연 뭘까? 정답은 지금 당장 반려동물의 이름을 불러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을 테니 말이다.

 

본 컬럼은 로얄에이알씨에서 출간한 '수의사로 산다는 것'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하여 연재하고 있습니다.

출처:petzine
출처:pet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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