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냥이의 행복한 하루] 8. 용감한 브루스, 너구리와 맞짱뜨다

  • 컬럼니스트 주호석

입력 : 2017.03.27 14:51

옆구리에 큰 상처입고 병원에 입원

고양이들은 자기가 살아가는 일정 영역에 대한 수호본능이 매우 강하다. 자기가 정해놓은 테리토리에 다른 동물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으려 한다. 자기의 테리토리는 대변이나 소변 또는 자신의 털 같은 것으로 경계 표시를 한다. 그런 분비물들은 냄새를 발산함으로써 다른 동물들에게 자기 테리토리임을 알림과 동시에 침범해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를 하게 된다.

만약 너구리 스컹크 등 다른 동물이 자신의 테리토리를 침범해올 경우 몸집이 크게 보이도록 털을 부풀리고 두 귀를 뒤쪽방향으로 납작 낮춰서 전투태세를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같은 동물인 고양이일지라도 친구가 아닌 모르는 녀석이 침범해오면 일전을 마다하지 않는다.
 

브루스는 울타리나 지붕 등 높은 곳에 자주 올라가는데 그것은 자기 테리토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브루스는 울타리나 지붕 등 높은 곳에 자주 올라가는데 그것은 자기 테리토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브루스는 울타리나 지붕 등 높은 곳에 자주 올라가는데 그것은 자기 테리토리를 감시하기 위한 것이다


브루스가 애기티를 벗어나 제법 건장한 청년 고양이로 성장했을 때 어느 주말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밖에서 놀다가 오후에 집에 들어왔는데 평소와 달리 훼밀리룸 소파 밑으로 기어들어가 꿈쩍을 안 하는 것이었다. 소파 밑으로 녀석을 들여다보니 겁먹은 눈으로 두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싫어하는 걸 억지로 잡아 끌어내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브루스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니 오른쪽 옆구리에 기역자(ㄱ) 모양의 큰 상처가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10센티미터 정도의 큰 상처인데 털이 붙어 있는 표피가 완전히 분리되어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끔찍한 상처였다. 너무 끔찍해 처음 보는 순간 내 몸에 소름이 돋고 부르르 떨려왔다. 상처를 입던 순간엔 피도 많이 흘렸을 것 같았다.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리며 웅크리고 있는 녀석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돼 보였다. 얼마나 아플까....
 

밴쿠버 메트로타운과 가까운 디어레이크 근처에는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다(디어레이크 야경)
밴쿠버 메트로타운과 가까운 디어레이크 근처에는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다(디어레이크 야경)
밴쿠버 메트로타운과 가까운 디어레이크 근처에는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많이 살고 있다(디어레이크 야경)


추측컨대 브루스가 자기 테리토리에 침입한 다른 동물과 한판 싸움을 했거나 뾰족한 나뭇가지 등에 걸려서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전자일 가능성이 컸다. 브루스가 노니는 우리 동네는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주변은 물론 집집마다 커다란 정원에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져 있어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너구리는 물론 고요테 삵(Bob Cat) 과 같은 사나운 짐승들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특히 너구리는 너댓마리의 가족 단위로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나타나는데 덩치 큰 놈은 브루스보다 몸집이 훨씬 큰 데다 앞발이 사람 손 크기만큼 크고 발톱이 길고 날카롭다. 만일 고양이가 그런 너구리와 싸우게 되면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브루스가 자기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그런 너구리와 목숨을 걸고 일전을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

브루스한테서 상처를 발견한 게 주말이어서 하는 수없이 사람들이 상처 났을 때 바르는 하얀색의 가루약을 발라주고 임시 응급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에 동물병원에 갔다. 케이지에 넣어서 데리고 가는데도 전에 병원 갈 때와 달리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았다. 큰 상처 때문에 기운이 없기도 하고 먹지도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자 카운터 여직원이 브루스를 기억하는지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Bruce Ju'라고 적힌 차트를 꺼내 몇 가지를 적어넣었다.

잠시 후 수의사가 안에서 나와 브루스 상처를 살펴보더니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수술을 하고 병원에 2~3일 정도 입원해 상태를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또 수술을 하더라도 만약 세균감염(Infection)이 있으면 살아나기 어렵다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내와 나는 할 말을 잊은 채 얼굴을 마주보고 한참을 멍하니 바라다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대낮에 집 문앞까지 다가온 너구리 녀석
대낮에 집 문앞까지 다가온 너구리 녀석
대낮에 집 문앞까지 다가온 너구리 녀석


브루스를 입원시킨 뒤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침통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브루스 걱정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이틀이 지난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브루스 주' 퇴원해도 된다는 연락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갔더니 의사가 다행히 세균감염이 되지 않아 생명에 지장이 없고 수술도 잘 됐다고 한다. 브루스는 약간 풀이 죽어 보이기는 하는데 우리를 보더니 반가운 듯 다가왔다. 수술자리는 찢어진 부위를 여러 바늘 꿰매고 접착제로 붙여놓은 듯 했다. 

카운터 여직원이 며칠간 먹이라는 항생제와 함께 수술비 청구서를 내놓았다. 1천 달러가 약간 넘는 돈이었다. 적지 않은 돈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우리 가족 중 하나인 브루스 생명을 구했다고 생각하니 그 돈이 그리 아깝게 여겨지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하고 수술비 얘기를 하다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브루스가 평소 우리한테 선사하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돈으로 환산하면 그까짓 1천 달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집에 돌아오는 동안 자동차 뒷자리의 케이지 속에 들어있는 브루스가 한 번도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했다. 자기 때문에 쓴 돈 얘기를 듣는 게 민망했던 것일까. 브루스는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 때문에 큰돈 쓰게 해서 미안해요. 다시는 너구리하고 쌈박질하지 않고 다치지도 않을게요' 라고. 지금도 브루스의 오늘쪽 옆구리에는 그때의 상처가 남아 있다. 테리토리를 지키기 위해 너구리와 용감하게 싸운 대가로 얻은 훈장처럼.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