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냥이의 행복한 하루] 11. 와잇스팟 떠나던 날

  • 컬럼니스트 주호석

입력 : 2017.05.02 09:51

4년 여 짧은 인연... 아름다운 왕비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살길

우리 집 정원 한쪽 코너에 유독 하얀 꽃이 많이 피는 별도의 공간이 있다. 크기는 작지만 아주 아담하고 안온한 곳이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중에 특별히 그곳을 좋아하는 분도 있다. 이른 봄에는 하얀색의 이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그 꽃이 지고 나면 향기 그윽한 하얀색 릴리가 곱게 피어난다. 또 여름이 시작되면 새하얀 데이지꽃이 환하게 피어나 한동안 꽃동산을 이룬다. 

바닥에 조약돌 자갈이 깔려있는 그곳에는 또 하얀색의 철제 둥근 테이블과 의자 두 개, 그리고 검은색 의자 한 개가 놓여있다. 그리고 남매가 꽃을 가꾸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하나 놓여 있는데 그것 역시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다. 제법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그곳에는 또 둥글둥글 잘 생긴 큰 바위들이 여럿 놓여 있고 그중 가장 큰 바윗돌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WhiteSpot Garden'. 

이렇게 하얀색을 상징으로 하는 아담한 공간을 마련하고 바위에 와잇스팟 가든이라는 사인을 새겨놓은 것은 우리 가족에게 사랑과 행복을 듬뿍 안겨주고 짧은 삶을 산 뒤 떠나버린 와잇스팟을 잊지 않고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다. 흰색은 와잇스팟의 목과 배 그리고 네 발을 덮고 있었던 눈부시게 하얀색 털과 연관이 있다. 와잇스팟의 흰털은 백설보다 더 하얗고 깨끗한 순백이었다. 귀엽고 깜찍하고 새침하고 똑똑했던 그 녀석의 성격을 색깔로 표현하면 바로 그런 순백의 흰색이 아닐까 싶다.
 

와잇스팟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와잇스팟 가든 표지석
와잇스팟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와잇스팟 가든 표지석
와잇스팟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와잇스팟 가든 표지석


밴쿠버의 겨울은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난다고 할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린다. 또 겨울이 길어 봄이 시작되는 3월에도 비가 계속 내리는 게 보통이다. 와잇스팟이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나간 그 날도 역시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2011년 3월 24일이다.

브루스나 와잇스팟이나 모두 낮에는 시도 때도 없이 집을 드나들며 밥을 먹고 낮잠도 자고는 한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아예 출입문 방충망 아랫부분에 구멍을 내서 녀석들이 아무 때나 드나들도록 하는데 겨울에는 방충망만 닫아놓을 수가 없어서 자주 들여다보고 녀석들이 밖에 와 기다리고 있으면 문을 열어주고는 한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위층 방바닥의 카펫을 걷어내고 새로 마루를 까는 날이었다. 마 루까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하루 시간 대부분을 방안에서 보내게 되었고 고양이 녀석들을 챙기는 횟수가 평소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저물고 어둠이 몰려왔다. 두 녀석 중 브루스가 일찌감치 귀가했다. 
 

와잇스팟이 떠나기 1년 전의 아름다운 모습
와잇스팟이 떠나기 1년 전의 아름다운 모습
와잇스팟이 떠나기 1년 전의 아름다운 모습


그 뒤로 몇 번인가 내려가 출입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아도 기다리는 와잇스팟이 보이질 않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녀석들의 귀가 시간은 들쭉날쭉해서 예측불허인 데다 가끔 밖에서 밤을 지새고 다음날 들어오는 날도 종종 있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좀 늦는다고 해서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내 예감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내일 아침이면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억지로 불안감을 떨쳐내면서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저녁마다 아내하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큰소리로 와잇스팟을 불러댔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날 내가 느꼈던 예감이 자꾸만 떠올랐다. 브루스가 일주일 동안 가출했을 때처럼 애완동물보호소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와잇스팟은 보이질 않았다. Missing Cat 포스터를 만들어 여기저기 붙여보기도 했지만 누구한테서도 소식이 오질 않았다.
 

와잇스팟 가든에 놓여 있는 화분들
와잇스팟 가든에 놓여 있는 화분들
와잇스팟 가든에 놓여 있는 화분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비관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가출 후 일주일 만에 귀가한 브루스의 경험 때문인지 일주일이 마치 마지노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와잇스팟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동안 '와잇스팟이 하루빨리 무사히 돌아오게 해주소서' 하고 기도를 해온 아내가 이제는 기도제목을 바꾸기 시작했다.  '만약에 와잇스팟에게 무슨 슬픈 일이 일어났다면 다음 세상에서는 아름다운 왕비로 다시 태어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게 해주소서' 하는 기도였다. 

나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그 녀석 생각에 울컥해지고는 했다. 두 녀석 모두 내가 식탁 의자에 앉기만 하면 꼭 내 무릎 위로 뛰어올라 앉아있고는 했는데 그러던 와잇스팟이 없어져 허전하기 이를 데 없고 그토록 사랑스럽던 와잇스팟이 무슨 변고를 당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슬픔이 복받쳐 올라왔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소파에 누워있으면 꼭 나타나서 내 팔을 베고 누워 새근새근 잠을 자던 그 녀석이 아니었던가. 팔을 베고 잠을 잘 때도 약간 뻣뻣한 느낌이 드는 브루스와 달리 그 녀석은 마치 엄마 품에 안긴 어린 아기처럼 내 품에 포옥 안겨서 잠을 자고는 했었는데.... 잠잘 때 분홍색 입술이 유난히 선명했던 그 녀석이었는데... 오호 통재라.
 

와잇스팟 가든에 피어 있는 릴리와 데이지꽃
와잇스팟 가든에 피어 있는 릴리와 데이지꽃
와잇스팟 가든에 피어 있는 릴리와 데이지꽃


직장에서 동료들한테 와잇스팟 얘기를 하다가 눈시울을 붉혔더니 한 친구가 '가출한 고양이가 15년만에 주인을 찾아온 경우도 있으니 너무 상심 말고 기다려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 돌아올 수만 있다면 15년 이상이라도 기다려야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내 이야기가 되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저녁 와잇스팟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똑순이 와잇스팟이 길을 잃었을 리는 만무하다. 약간 까칠한 성격에 낯을 많이 가리는 그 녀석이 모르는 사람한테 붙잡혀갔을 리도 없다. 제발 아니기를 바라지만 결국 고요테 같은 야생동물과 맞닥뜨려 용감하게 싸우다가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4년 여 너무나 짧은 생이다.

암팡지고 적극적이어서 브루스와 싸워도 이기는 와잇스팟이지만 사납기로 유명한 고요테를 이기기는 역부족이었을 게다. 고양이는 말할 것도 없고 덩치가 큰 개도 고요테와 만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고요테와 맞닥뜨렸으리라는 추측을 할 때마다 너무나 끔찍하고 마음이 아프다. 사투를 벌이다 힘을 당하지 못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며 얼마나 겁에 질리고 무서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인박명이라. 원래 남달리 예쁘게 태어난 사람과 머리 좋은 천재는 명이 짧다고 하지 않던가. 귀족처럼 이쁘고 아름답고 똑순이처럼 스마트했던 와잇스팟이었으니 애통하기 짝이 없지만 어쩌겠는가. WhiteSpot Garden을 지나칠 때나 그곳 테이블에 앉아 시간을 보낼 때마다 녀석의 이쁘고 귀엽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한다. '사나운 짐승이 없는 한없이 평화로운 곳에서 아름다운 왕비로 다시 태어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다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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