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냥이의 행복한 하루] 12. 고독한 삶이 남긴 흔적

  • 컬럼니스트 주호석

입력 : 2017.05.12 17:52

동물이나 사람이나 무던한 성격이 더 사랑받아

우리 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는 사진액자가 여러 개 걸려 있다. 아래에서 위쪽으로 똑같은 크기와 모양의 액자들이 세 개 걸려있고 맨 위에 있는 하나는 모양도 크기도 다른 액자다. 세 개의 같은 액자들에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모습을 찍은 가족사진들이 들어있다. 그 사진들을 보면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과 함께 내가 늙어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식이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부모가 늙어가는 것이라는 자연 이치를 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다. 

그리고 맨 위 마지막 액자에는 와잇스팟과 브루스가 나란히 같은 자세로 담장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 들어 있다. 두 녀석이 같은 포즈를 취하고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향하고 있는 그 사진을 보면 마치 사진을 찍기 위해 고양이들을 연출시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과거 한국에 살 때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아내의 숨은 사진 촬영 실력이 만든 작품이다. 우리 집을 방문했던 화가 한 분이 그 사진을 보고 '정말 촬영하기 어려운 사진을 잘 찍으셨네요' 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벽에 걸려 있는 와잇스팟과 브루스 사진 액자
벽에 걸려 있는 와잇스팟과 브루스 사진 액자
벽에 걸려 있는 와잇스팟과 브루스 사진 액자


고양이 두 녀석이 함께 포즈를 취한 그 사진 액자는 또 단순한 작품 사진이 아니라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사진이기도 하다. 우리 가족의 히스토리가 표현된 나머지 여러 사진들과 연관이 지어져 있는 것이다. 즉 고양이 두 녀석들도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맨 위에 그 액자를 걸어놓은 것은 그 녀석들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아주 중요한 존재임을 뜻한다. 


며칠 전 앨범에서 고양이들 사진을 뒤적이던 아내가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사진을 찾다 보니 와잇스팟 사진은 별로 없고 거의 대부분 블루스 사진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아이들 어릴 때 형제 중에도 이뻐하는 애 사진을 더 많이 찍듯이 고양이도 블루스를 더 이뻐해서 와잇스팟 사진이 별로 없는 것 같다 했다. 
 

와잇스팟이 배를 하늘로 치켜들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
와잇스팟이 배를 하늘로 치켜들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
와잇스팟이 배를 하늘로 치켜들고 낮잠을 자고 있는 모습


실제로 아들과 여섯 살 터울인 늦둥이 딸을 낳고 나서 얼마나 이뻐했는지 딸이 어릴 때 사진이나 비디오 찍은 것을 보면 오빠인 아들은 늘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다. 항상 주연 격인 딸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고 아들의 모습은 초점에서 벗어난 한낱 조연에 불과하다. 어떤 비디오를 보면 동생을 웃게 하려고 갖은 짓을 다 하며 애쓰는 오빠는 화면 속에 가끔 보였다 말다 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딸이 천방지축 왔다 갔다 하며 웃고 떠드는 모습만 찍혀 있다.

언젠가 아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 아내가 아들한테 '너 그 당시에 엄마 아빠가 동생만 이뻐해서 속상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았니?'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아내가 아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아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아니, 나 괜찮았어'라고 대답한 것이다. 하긴 동생이 태어나기 전에는 동생 못지않게 아들인 자기가 엄마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테니 그런 반응이 이상할 것도 없다. 
 

와잇스팟이 사라진 뒤 동네 여기저기에 붙였던 Missing Cat 포스터
와잇스팟이 사라진 뒤 동네 여기저기에 붙였던 Missing Cat 포스터
와잇스팟이 사라진 뒤 동네 여기저기에 붙였던 Missing Cat 포스터


와잇스팟의 사진이 상대적으로 브루스 사진에 비해 적은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와잇스팟은 겨우 4년여의 짧고 외로운 생을 살다 갔다. 똑똑하고 영리하고 적극적이었던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자취를 감춘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브루스에 비해 우리와 함께 한 시간이 짧은 그 녀석 사진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또 녀석들이 우리 가족으로 입양해 오고서 처음엔 지금처럼 그렇게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도 브루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와잇스팟 사진이 적은 이유 중 하나다. 즉 어릴 적엔 별로 귀엽거나 이쁜 존재들이 아니었으니 찍은 사진이 많지 않은 것이다.

와잇스팟 사진이 적은 또 다른 이유는 녀석이 워낙 새침하고 까칠하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사람이 접근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어떨 때는 아내 또는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홱 도망가버리곤 했었다. 그러니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았었다. 반면에 브루스는 제가 무슨 무비스타라도 되는 양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가면 멋진 포즈를 취해주고는 했었다.

와잇스팟의 그런 성격 때문인지 딸 애니는 나 그리고 아내와 달리 브루스를 편애했던 게 사실이다. 두 녀석이 함께 있어도 와잇스팟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로지 브루스만 이뻐해 주고는 했었다. 딸이 그렇게 대하는 와잇스팟이 이따금 너무나 안쓰럽고 외로워 보여서 나는 기회만 있으면 와이스팟을 더 안아주고 이뻐해 주고는 했었다. 어느 날 내가 '애니, 왜 브루스만 이뻐하고 와잇스팟은 그렇게 미워하니?' 하고 딸한테 물었더니 '와잇스팟은 못생겼어'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브루스와 함께 정원 소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와잇스팟
브루스와 함께 정원 소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와잇스팟
브루스와 함께 정원 소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와잇스팟


브루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눈망울이 작았던 와잇스팟은 두 눈꼬리가 위로 약간 치켜 올라간 모습이었는데 그걸 안 이쁘게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눈망울이 왕방울만 하고 얼굴이 반듯하게 잘 생긴 브루스와 비교가 될 만도 했었다. 그러나 유독 딸이 와잇스팟에 대해 덜 호감을 갖고 있었을 뿐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잇스팟에게도 브루스 못지않은 사랑을 베풀어주었다.

그래서 나는 와잇스팟이 사진도 덜 찍히고 딸로부터 별로 호감을 사지 못했던 것은 외모 문제가 아니라 그 녀석의 성격과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믿고 있다. 어린 아기가 성격이 무던해서 아무한테나 잘 안기고 낯을 안 가리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지만 까탈스러울수록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어렵듯이 고양이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동물이든 사람이든 성격이 유별나게 까다롭거나 모가 나면 외로운 삶을 살게 되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와잇스팟이 새삼 확인시켜주고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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