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야 고맙다냥 '느릿느릿' 나만의 속도 지켜줘서

  • 이해나 기자

입력 : 2018.05.28 10:13

SNS 스타 된 소심한 고양이 '순무'

제공= 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제공= 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인스타그램을 뜨겁게 달구는 고양이가 있다. 두 살 된 수컷 고양이 '순무'다. 순무가 거느리고 있는 '랜선집사'(인터넷을 통해 다른 사람이 키우는 고양이의 사진·동영상을 즐겨보는 사람. 일종의 팔로워)는 18만명이 넘는다. 순무는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겁 많은 아기 고양이였지만 신혼인 '순무 엄마' 윤다솜씨 부부의 가정에 입양돼 아주 천천히 용기를 얻어 애교쟁이 고양이로 거듭났다. 윤씨는 이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과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순무는 '스타 냥이'가 됐다. 윤씨 또한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후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아팠는데 순무와 함께 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최근에는 순무 이야기를 담은 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를 출간했다. 순무는 세상과 어떻게 소통하게 된 걸까. 윤다솜씨가 SNS와 책에 쓴 내용을 정리했다.


겁먹은 채 입양됐던 고양이 순무는 반려인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장하며 건강하고 애교 많은 ‘스타 냥이’가 됐다. /사진 제공=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겁먹은 채 입양됐던 고양이 순무는 반려인의 관심과 사랑 속에 성장하며 건강하고 애교 많은 ‘스타 냥이’가 됐다. /사진 제공=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겁먹은 아기 고양이를 처음 만나다

남편과 내가 순무를 처음 만난 날, 태어난 지 5개월밖에 안 된 순무는 잔뜩 겁먹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몸에선 악취가 났다. 태어나 한 번도 병원에서 검진이나 예방접종을 받은 적 없었다. 역시 순무는 집에 와서도 이동장(고양이를 옮기는 가방) 구석에서 움직이지 않고 쥐죽은 듯 있었다. 걱정됐지만, 우리는 순무를 절대 강제로 꺼내지 않았다. 이동장 문을 열어둔 채 가장 조용한 방에 놓아두고 그 앞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시원한 타일을 깔고, 사료·물·화장실을 뒀다. 나흘이 더 지나서야 순무는 조심스럽게 이동장을 나왔다. 하지만 이내 컴퓨터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 꼼짝하지 않았고, 우리는 또 기다렸다. 기다림에 대한 고마움이었는지, 남편이 조심스럽게 손 내밀던 순간 순무는 ‘그르릉’거리며 기분 좋다는 표현을 했다. 이후 또 순무가 다가와 주길 몇주를 기다렸고, 순무는 거실 소파 등으로 이동 영역을 넓혀가며 우리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겁쟁이 ‘순무’, 소통을 시작하다

순무는 안 좋은 과거의 기억 때문인지 일반적인 고양이보다 훨씬 조용한 편이었다. 하지만 내성적이던 순무의 성격도 점차 과감하게 바뀌었다. 점차 환경에 적응하고 마음이 편해지면서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는 남편이 뽀뽀하려고 입술을 내밀면 손으로 입을 막는다. 화날 때는 입을 벌려 ‘화났다’는 의사 표시를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살짝 물기도 한다. 한때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택배로 배달온 상자에도 거리를 두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자에 들어가는 재미를 붙여 택배만 왔다 하면 상자에 들어가 우리가 찾을 때까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높은 곳에도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는 벽에 새로운 걸 걸면 부리나케 순찰을 간다. 감정에 솔직해진 순무의 모습을 보는 게 기쁘다.

제공= 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제공= 책 순무처럼 느려도 괜찮아 


사람과 고양이, 가족이 되다

남편과 나는 세상에서 겪은 어려움을 순무로부터 위로받기 시작했다. 특히 퇴근 후 반겨주는 순무는 하루를 지내며 모났던 마음을 단번에 녹인다. 한 번은 몸이 아파 끙끙 앓은 적이 있다. 순무는 어떻게 알았는지 자연스럽게 내 옆에 와 누웠고, 다음 날 아침까지 옆을 지켰다. 병원에서는 며칠 고생할 거라고 했지만, 다음 날 몸이 한결 나아졌다. 내가 순무를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순무는 더 큰 진심과 행동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서로의 외로움을 채우고 달래주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순무는 우리에게 고양이 그 이상의 존재가 됐다. 순무의 생일은 물론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는 12월 31일도 함께 축하하고, 건강을 소원하는 완전한 가족 구성원이 됐다.

기다림의 시간… ‘순무’에게 인생을 배우다

우리는 순무와 살며 인생이 감사해졌다. 순무를 알고 난 후부터 대수롭지 않던 일상이 특별하고 소중해졌다. 순무가 마음을 열기까지 긴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하지만 순무만의 속도를 인정하고 기다렸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순무는 결국 넓고 깊게 마음을 열어줬다. 순무를 통해 사람도 결국 순무처럼 천천히 어제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게 됐다. 그래서 우리는 순무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순무야 걱정하지마. 우리가 너의 속도를 지켜줄게,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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